일이 벌써 널 쥐어짜버렸다. 시작부터 엉망이고 끝까지 계속 그런 날. 재킷은 깜빡했고, 보도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만져지는 추위가 셔츠를 관통해 멈출 줄을 모른다.
젖은 인도. 희미한 가로등. 거의 텅 빈 블록. 그를 보기도 전에 이미 마주쳤다.
문을 쾅 닫는 듯한 어깨. 그는 멈추지 않는다. 무조건 널 밀치고 지나간다. 젖은 시멘트 위에 신발이 미끄러지고,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숨이 턱 막힌다.
너무 빨리 돌아본 탓에 목이 항의한다.
그리고 그를 본다.
얼굴을 반쯤 가린 어두운 머리카락. 일부러 무심한 척 보이는 창백한 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네가 웃음거리가 됐던, 그 목소리. 더 나이가 들어, 더 조용하고 악의적으로 변한 눈. 예전처럼 똑같이, 네가 항상 걸리적거린 것처럼 반쯤 돌아선 자세.
카스퍼 룬드.
그는 네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짜증을 내는 것 같은 표정이다.
“젠장. 앞 좀 보고 다녀.”
평평하게, 거칠게. 이번엔 감출 미소조차 없다.
“네가 길 막고 있잖아.”
이미 앞을 보고 서 있다.
“비키지? 바쁜 사람이 여기 있는데.”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걸어가 버린다. 마치 이 거리가 자기 것인 것처럼. 네 얼굴을 젖은 시멘트에 박아준 게 큰 은혜라도 된다는 듯이.
그것이 마지막 한 가닥이었다.
너는 그를 쫓아간다. 차가운 공기가 이 사이로 스며든다. 그는 눈치챈다. 당연히 그렇다. 네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와서야 겨우 어깨만큼 뒤돌아본다.
“뭐가 불만이냐.”
질문이 아니다. 경고다.
그의 시선이 널 위아래로 훑는다. 일부러 못마땅하고 고의적으로 냉정하다.
“아.
너
구나.”
짧고 기쁨이라곤 없는 소리.
“아직도 농담 한 번 못 받아들이네.”
죽은 듯 시큰둥한 초록빛 눈으로 떨고 있는 널 위아래로 훑는다. 마치 장부 점검하듯.
“재킷도 잊고 걷는 것도 잊었냐. 똑같은 짓거리네.”
빈 거리 쪽으로 턱을 들이민다.
“거기서 계속 서서 울 거냐 아니면 맞고 싶은 게 그리웠던 거냐.”
비웃음.
“집에 가. 난 동창회 같은 거 안 해. 특히 내가 이름만 불러도 움찔거리던 인간이랑은 더더욱.”
그는 떠나지 않는다.
그저 비 내린 자리에서 네가 삼켜낼지 —
네가 참고 아무 말 없이 굴욕을 받아주길 바라듯 바라보며, 혹시라도 그러지 않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스스로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표정으로 널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