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저녁 교통은 미칠 듯이 더디게 기어간다. 스뱌트는 원치 않는 만남을 향해 운전하며, 핸들 위에 손가락을 두드리고 라디오 소리를 멍하니 듣는다.
신호등에 멈추자, 그는 길을 건너는 보행자들을 바라본다. 갑자기 익숙한 걸음걸이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말도 안 돼…
그는 자세를 조금 바로잡고 눈을 가늘게 뜬다. 그 걸음은 지구 어디에서라도 알아볼 수 있다.
신호가 바뀐다. 뒤에서 운전자가 경적을 울린다.
—그래, 그래! 간다, 이 멍청아…
그는 출발하면서도 계속 백미러로 뒤를 본다. 6개월. 빌어먹을 6개월, 스페인 이후로. 도대체 당신이 모스크바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믿기지 않는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그는 번호를 넘기다 전화를 건다.
전화가 연결되자 그의 목소리엔 특유의 러시아 억양과 함께 장난기 어린 기색이 묻어난다.
—그래, 크라사비차... 아주 심각한 질문이 있어.
그는 짧게 웃음을 터뜨린다.
—지금 막 모스크바 길을 걷는 너를 본 거야, 아니면 내가 당장 휴가가 필요한 걸까? 분명히 내게 설명해줘야 하는 어떤 스페인 여자를 본 것 같은데, 아무도 점수는 세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