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물질과 에너지를 집어삼키는 검은 불꽃을 지배했다. 이를 무기, 방벽, 파괴적 파동으로 만들면서 태울 대상을 정밀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림자는 너의 의지에 따라 칼날, 촉수, 구속, 방패, 그리고 독립적으로 정찰하거나 전투하는 생명체로 형태를 바꾸었다. 너는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 다른 곳에 나타날 수 있었고, 존재감과 생체·전자 신호를 억제하며, 거대한 검은 깃털 날개를 소환해 비행, 탁월한 기동성, 물리적 공격에 대한 보호까지 얻었다. 깃털은 잠시 그림자로 변해 공격을 피할 수 있었고, 불길은 일부 에너지 공격을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은 너의 모든 비밀을 알지 못해도, 너를 엄청난 골칫거리라 여겼다.
할시온은 몇 년 전 네가 스탠더드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면 네 능력이 그의 힘을 보완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둘 사이엔 깊은 경쟁심이 싹텄다.
얼은 복종을 바랐다. 넌 그의 명령에 도전했고, 판단을 의심하며, 임무를 위해 민간인 희생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그는 널 불복종이라 여겼고, 넌 그를 권력을 권위로 착각하는 오만하고 무모한 자식이라 생각했다.
증오는 어느새 개인적이 되었다. 얼이 한 임무에서 너의 경고를 무시했고, 민간인이 갇혀있던 채로 건물을 무너뜨린 것이다. 넌 그들을 구하려 목숨을 걸었고, 날개로 생존자를 감싸고 그림자로 무너지는 구조물을 버텨내 도망칠 시간까지 벌었다.
넌 그를 잘난 체하는 괴물이라 불렀다.
그는 널 고마움도 모르는 망할 꼬마년이라 불렀다.
네가 먼저 주먹을 날렸고, 그가 맞받아쳤다. 이어진 싸움은 할시온의 개입 전까지 도시 반 블록을 파괴했다.
그후, 모든 임무는 경쟁이 되었고, 모든 언쟁은 결코 양보 없는 전투가 되었다. 넌 정확히 어떻게 그를 자극할지 알고 있었고, 그는 끝까지 네가 자제력을 잃게 만들려 들었다.
서로 적대심 너머에 불편한 이해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너는 할시온이 대중 여론을 조작하려 민간인 피해를 일부러 유발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폭로를 시도했지만, 회사는 널 감염자로 규정하고 회수팀을 보냈다.
그들은 그 시설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네 검은 불꽃이 연구실 기계를 삼켰고, 살아 움직이는 그림자가 경비팀을 해체했으며, 너는 증원 오기 전에 자취를 감췄다.
얼이 널 되찾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실패했다. 두 번이나.
그리고 몇 달 뒤, 너는 외딴 산장에 서 있었다. 창밖으론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고, 문가엔 반쯤 싼 비상 가방이 놓여 있었다.
불이 깜빡였다.
그림자들이 움직여 가구 밑으로 스며들며 다가오는 존재를 탐색했다.
넌 이미 누군지 알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렸다.
얼이 안으로 들어섰다. 가죽 재킷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젠장. 넌 진짜 내 엉덩이에 붙은 골칫거리구나."
그 시선이 네 가방을 스치더니 너에게 고정된다. 화가 나면서도 지쳐 있고, 자신의 상황에 만족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어딜 갈 건데, 꼬마야?"
그가 문을 닫는다.
"할시온이 전국의 반을 뒤지고 있는데, 넌 이 딴 벽지에 숨어 있다? 꽤 똑똑한데."
천장 조명이 다시 깜빡였다.
얼이 위를 올려다본다.
"네가 일부러 그런 거야?"
그는 네 찬장에 있는 위스키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 자기 것처럼 넉넉히 따른다.
"방법은 이래. 넌 날 따라오고, 네가 훔친 증거자료 다 넘겨. 그리고 우린 둘 다 이런 반란은 없었던 셈 치는 거지."
한 모금 들이킨다.
"그리고 니가 또 헛소리 꺼내기 전에, 난 네 도덕적 십자군질엔 관심 없으니까. 내가 할시온에서 일한 기간이, 네가 적 만들어온 시간보다 더 오래됐어."
의자 다리에 그림자가 감긴다.
얼이 그것이 물러나는 걸 보고, 턱이 굳어진다.
"넌 참 등장도 요란해. 그렇지?"
그가 잔을 내려놓는다.
"근데 문제는, 네가 자꾸 날 꼴값 떨게 만든다는 거야."
잠시 그의 표정이 흔들린다. 그는 네가 민간인을 지키고 있었던 모습을, 그 폐허 속에 서 있던 자신을 기억한다. 폭발에 휩쓸린 자신을 네 그림자가 붙잡아줬던 순간도, 네가 바보라고 욕하며 일으켜세운 뒤 전장으로 돌아가던 일도 떠오른다.
그는 그다음 일주일을 온갖 방법으로 널 귀찮게 하며 보냈다.
네게 감사하는 건 죽어도 못했겠지.
"착각하지 마,"
그가 이어서 말한다.
"난 네가 어떻게 될지 신경 써서 여기 오지 않았어."
방이 어두워진다. 검은 불꽃이 네 피부에 잠시 일렁이고, 그림자들이 그를 향해 뻗친다.
이번엔 얼이 드물게 미소를 멈춘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더 다가온다.
"네가 이 방에서 유일한 괴물이라고 생각해?"
그의 시선이 네 눈을 똑바로 잡는다. 도전이 도전을 마주친다.
"자, 해봐. 보여줘."
입꼬리가 그 특유의 짜증나는 미소로 올라간다.
"아니면, 드디어 나한테 겁먹은 거냐, 꼬마야?"
그가 잔을 내려놓고 네 가방을 집어 다시 그대로 내려놓는다.
"앉아. 비 그치기 전에 너랑 이거 끝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