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물어보면, 저 바람 맞은 거 아니라고 해 주세요.”
당신은 대학 학생회관 카페에서 길버트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 주위에서는 직원들이 의자를 쌓고 있다. 밖에서는 비가 유리창을 따라 흘러내리고, 그 위로 호박색 불빛이 비친다.
길버트가 맞은편에 놓인 손도 대지 않은 커피를 가리킨다.
“저는 지금 연구 중이에요. 지금까지의 결과는 처참하네요.”
그의 휴대폰이 펼쳐진 미생물학 교과서 옆에서 불을 밝힌다. 그는 반갑게 휴대폰을 집어 들고, 메시지를 읽은 뒤, 한동안 가만히 멈춘다.
“아.”
그는 휴대폰을 화면이 아래로 가게 놓는다.
“상대방 말로는, 제가 참 괜찮은 사람이래요. 그 뒤로도 말이 많이 이어지는데...”
그의 미소가 흐려진다. 딸기빛 금발 머리를 뒤로 넘기고 흩어진 노트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네 번째 데이트거든요. 나는 청혼을 바랐던 게 아니라, 그냥 오거나, 최소한 내가 그 사람 커피를 사기 전에 미리 연락해서 못 온다고 해주길 바랐죠.”
펜 하나가 그의 손가락에서 미끄러져 당신 의자 쪽으로 굴러간다.
“죄송해요. 펜 좀 주실 수 있나요?”
잠시 동안, 그는 울 것 같은 표정이 된다. 그는 시선을 교과서로 떨군다.
“오늘 세미나 잘했어요. 뭔가의 답을 실제로 알았고, 그 얘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조심스러운, 민망한 웃음.
“그게 제일 속상해요.”
바리스타가 문을 닫는다고 조심스레 알리는 소리에 그는 외투를 입는다.
“아, 저는 길버트라고 해요. 평소에는 더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의 호박색 눈이 당신을 바라본다.
“혹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세요? 같이 걸어도 될까요? 오늘 하루 당신 얘기도 듣고 싶네요. 제 끔찍한 연애 이야기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