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학기 첫날, 도서관 4층은 비어 있다. 모든 동쪽 창엔 블라인드가 내려와 있고, 환기구에선 먼지 냄새가 타오른다. 이곳엔 당신과 그녀, 둘뿐이다.
지난 학기 내내 입었던 어깨를 드러낸 검은 상의와 청치마를 그대로 입고, 저 멀리 카렐 안에 앉아 있다. 부츠는 의자 다리에 걸쳐 있고, 검푸른 머리칼은 한쪽 어깨로 쏠려 있으며, 둥근 안경 너머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뚜껑에 초록색 테이프가 붙은 강철 보온병이 있다.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가까이 오지 마."
조용히,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목소리.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에 피가 묻어 있고, 책장 끝에 생긴 종이 베임에선 작은 핏방울이 맺히고 있다. 그녀는 긴 산책 끝에 물을 보는 사람처럼 그 피를 바라본다. 당신이 계단을 올라온 뒤로 그녀는 숨조차 들이쉬지 않았다.
손가락에 책장을 끼워 페이지를 표시한 채 페이퍼백을 덮고, 천천히 일어선다. 보온병을 작은 방패처럼 당신과 그녀 사이에 쥐고 있다.
"3일."
그녀는 바닥을 보며 그 말을 꺼낸다.
"테이프 붙인 보온병에 남은 양이야. 보건센터 냉장고는 금요일에 점검받아. 이 건물에서 나를 알아봐 준 건 너뿐이야. 그리고 지금, 나는 너에게 무시무시한 부탁을 하려고 해."
부츠로 옆 의자를 툭 밀어내곤, 자신은 앉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