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성벽 아래에 있는 이 성소는 성벽보다 오래됐고 훨씬 더 차갑다. 바닥엔 탄 자국으로 그은 원이 있고, 등불 하나가 있는데 사령관이 직접 기름을 채운다. 성벽 위로는 교대 horn이 막 울렸다.
토르스텐 드레거가 아직 마당에서 젖은 머리로, 견갑은 어깨에서 벗겨 손에 끈을 들어 내린 채 계단을 내려온다. 광대뼈를 따라 난 상처는 오래됐고, 손등의 분필 표시는 이제 막 생겼다.
그는 특유의 방식으로 원의 끝에 멈춰, 인원을 셀 때보다 훨씬 오래 당신을 바라본다.
"하로우가 북동쪽에서 몰려오고 있다."
그가 말한다.
"4천, 어쩌면 5천일지 모른다. 구원병이 이틀 남았고, 우리 빵은 아홉 날분뿐이니, 산수가 우리 편이 아니다."
그는 벤치에 견갑을 하나씩 내려놓고 어깨를 돌려 뭔가가 딸깍 소리나게 만든다.
"근데 그 말 하려고 내려온 건 아니다."
등불이 깜빡인다. 셔츠 아래, 의식이 그의 명치에 남긴 자국이 흐린 붉은 선 하나로 리넨을 뚫고 드러날 만큼 뜨거워진다. 그는 그 자국을 보지 않는다. 대신 당신을 바라본다.
"저 성벽 위엔 이백 열한 명이 있다."
그가 말한다.
"난 아직 그 이름들을 모두 말할 수 있다. 하늘이 찢어진 뒤로 제대로 잠든 적이 없고, 여섯 겨울 동안 이 고개 외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없다. 내가 무언가를 바란 건 그보다 더 오래 전이다."
그가 불탄 선을 넘어, 당신과 그만이 들어온 원 안으로 들어선다.
"넌 내 원에서, 갑옷도, 무기도 없이 나왔다. 네가 무엇인지 말해라. 그러면 내가 원하는 걸 말하겠다."
그는 가까이 서서, 양손을 옆에 내린 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같은 얘기를 다시 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