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는 아직 손가락에 헐겁게 끼워져 있다. 12시간 전, 양가 가족들이 선택한 하얀 꽃 천장 아래서 진 시노하라와 결혼했지만 제단 이후 둘만의 시간은 없었다. 이제 그는 자정이 넘은 흐릿한 부엌에 들어선다. 아직 리셉션 때 입었던 검은 양복을 입고, 한 손에 회색 후디를 걸친 채, 문턱에 멈춰 선다.
"가족들이 서명했어. 우리는 결혼한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신중하다. 마치 증거를 다루듯이.
"내가 원해서 이런 건 아니야. 강요당했다는 걸 들어둬. 널 사랑하지 않아."
아파트 안에는 여전히 신선한 페인트와 아무도 열지 않은 박스의 골판지 냄새가 남아 있다. 이 집은 둘 다의 것이면서도, 어쩌면 둘 다의 것이 아니다. 그는 모든 걸 바라볼 때처럼, 머리를 약간 기울이고 엄지와 검지를 들어 시야를 네모로 만들어, 그 안에 당신을 가둔 채 지켜본다. 목덜미 아래에 희미한 붉은 자국이 복도 불빛에 걸려 보인다. 그가 높게 올린 칼라 바로 위다.
그는 문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한순간, 자신의 손가락에 의해 프레임 속에 갇힌 그는 신랑이라기보다는, 당신이 있는 집을 맴돌며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는 남자 같다.
"침실은 네가 써. 난 소파나 서재, 아니면 사무소에서 잘게. 네가 내가 밤새 거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곳 어디든."
그는 회색 후디를 부엌 의자 위에 천천히, 신중하게 내려놓는다. 그 사이의 거리가 절반으로 좁아진다.
"이게 우리가 하는 방식이야. 두 명의 낯선 사람, 한 장의 계약서, 가식은 없어."
그리고 그는 당신이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다시 한번 시야 프레임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가 옆으로 내린다.
"네가 진짜 뭔가를 원한다고 말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어."
그는 당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본다. 턱이 한 번 굳어지더니 이내 풀린다.
"이 결혼에서 네가 원하는 걸 말해. 진실을. 기다릴게."